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정말 많이 자랐구나.' 아이들은 매일 어린이집에 오고 같은 놀이를 하고 같은 친구들과 생활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만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 달 전 모습을 떠올려 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곤 합니다.
처음에는 친구와 장난감 하나도 함께 사용하지 못하던 아이가 먼저 양보를 하기도 하고 작은 일만 생겨도 교사를 찾던 아이가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속상한 마음을 울음으로만 표현하던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말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도 있습니다.
14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며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아이들의 성장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고 놀이를 하며 하루하루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그래서 교사는 아주 작은 변화도 쉽게 지나치지 않게 됩니다.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글자를 읽기 시작했는지 숫자를 얼마나 셀 수 있는지를 먼저 궁금해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교실에서 매일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진짜 성장은 아주 작은 변화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며 가장 크게 성장했다고 느꼈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처음으로 친구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순간
어린이집에서 가장 반가운 변화 중 하나는 아이가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모습입니다. 처음 어린이집에 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마음이 먼저입니다. 놀이를 할 때도 자신이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먼저 잡고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친구가 울고 있어도 왜 우는지보다 자신이 하고 있던 놀이를 이어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아이들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친구가 울고 있으면 먼저 다가가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놀이를 함께하자며 자리를 내어 주기도 합니다.
교사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뒤에 있는 친구를 기다려 주거나 먼저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도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놀이를 시작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꼭 품에 안고 다른 친구가 가까이 오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친구가 같이 놀자고 이야기해도 고개를 저으며 혼자 놀이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또래와 어울리는 것이 쉽지 않은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만들던 작품이 망가져 속상해하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이 가지고 놀던 블록 몇 개를 친구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교사가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고 친구들이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행동한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정말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난감을 양보한 행동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친구의 마음을 먼저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매일 친구들과 함께 웃고 다투고 다시 화해하는 시간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교실에서는 아이가 친구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작은 모습을 볼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던 성장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스스로 해 보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성장했다고 느끼는 또 다른 순간은 스스로 해보려고 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입니다. 처음 어린이집에 오는 아이들은 작은 일도 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방을 정리하거나 준비물을 꺼내는 일도 교사를 바라보며 기다리기도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은 혼자 하기보다 누군가 도와주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습니다.
등원하면 늘 가방과 물통을 교사에게 건네주던 아이였습니다. 스스로 정리해 보자고 이야기해도 한동안은 제자리에서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저는 서두르지 않고 다른 친구들이 준비하는 모습을 함께 보며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아무 말 없이 사물함으로 걸어가 가방을 정리하고 물통도 제자리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혼자 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별것 아닌 일처럼 보였지만 아이에게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아이는 어려운 일이 생겨도 먼저 해보려고 하는 모습이 조금씩 많아졌습니다. 어른이 보기에는 사소한 변화일 수도 있지만 아이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실에서는 이런 작은 변화를 볼 때마다 아이가 한 뼘 더 자랐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 가방을 정리하는 일, 준비물을 챙기는 일처럼 어른에게는 당연한 일도 아이에게는 큰 도전입니다. 그래서 교사는 무엇을 얼마나 잘했는지보다 스스로 한 걸음 내딛으려는 모습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순간
교실에서 아이들이 크게 성장했다고 느끼는 또 하나의 순간은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할 때입니다. 처음에는 속상하거나 화가 나면 울거나 친구를 밀어버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직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울기만 하던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하고 친구의 이야기도 끝까지 들어 보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한 유아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아무 말 없이 울거나 친구를 밀어버려 교사가 중간에서 도와주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먼저 놀이를 시작하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울지 않고 친구에게 다가가 “나도 같이 하고 싶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도 “그래 같이 하자.”라고 답했고 두 아이는 자연스럽게 놀이를 이어 갔습니다.
교사가 먼저 해결해 준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대화를 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실에서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아이들은 눈에 띄지 않는 사이에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하루하루는 비슷해 보여도 어느 날 문득 달라진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 교사에게 가장 큰 기쁨이기도 합니다.
작은 변화를 기록하며 성장의 과정을 확인했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는 매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오히려 쉽게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가 처음 어려워했던 모습과 스스로 해낸 순간을 짧게라도 기록해 두려고 했습니다.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건 순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시작해 본 모습, 속상한 마음을 말로 표현한 장면은 이후의 변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상담할 때도 잘한다거나 부족하다는 결과만 이야기하기보다 처음에는 어떤 모습이었고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전하려고 했습니다. 글자나 숫자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뿐 아니라 친구를 이해하고 다시 시도하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도 아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중요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마다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와 방식은 달랐습니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기보다 이전의 자기 모습과 비교했을 때 생긴 작은 변화를 발견하는 것이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는 데 더 도움이 되었습니다.
친구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만 5세가 되면 친구를 먼저 생각하기 시작할까요?에서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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