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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교육

어린이집에서 친구와 다툰 뒤 교사가 바로 사과시키지 않는 이유

by 14년차 보육교사 2026. 3. 27.

교실에서 친구와 다툰 아이들에게 가장 쉽게 건네는 말이 있습니다.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자.” 저도 초임 시절에는 두 아이가 서로 사과하면 갈등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미안해.”라고 말하고 다시 놀이로 돌아가면 상황이 잘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풀리지 않은 채 교사의 말을 따라 사과한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문제로 다시 다투기도 했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왜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자신도 속상한데 친구의 마음만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느끼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사과를 먼저 시키기보다 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례대로 들었습니다. 같은 장면을 겪었어도 아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내용과 속상했던 이유는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충분히 이야기한 뒤에는 자신의 마음과 원하는 것을 친구에게 어떤 말로 전할 수 있는지 함께 찾아보았습니다. 14년 동안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갈등을 중재하며 알게 된 것은 “미안해.”라는 한마디가 갈등의 끝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오늘은 친구와 다툰 아이에게 바로 사과를 시키지 않았던 이유와 두 아이가 다시 놀이를 이어 갈 수 있도록 교실에서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실제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친구와 다툰 뒤 교사가 바로 사과시키지 않는 이유
어린이집에서 친구와 다툰 뒤 교사가 바로 사과시키지 않는 이유

 

"미안해"라는 말만으로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은 점토로 동물을 만들던 아이들 사이에서 다툼이 생겼습니다. 한 아이가 친구의 작품을 보며 “이상하게 생겼어.”라고 말하며 웃었고, 작품을 만든 아이는 속상한 표정으로 점토를 치워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웃었던 아이에게 친구가 속상해하니 사과하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는 곧바로 “미안해.”라고 말했지만 친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과는 했지만 무엇 때문에 속상했는지 서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두 아이의 표정은 그대로였습니다.

 

웃었던 아이도 자신은 놀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표정처럼 보여서 웃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두 아이에게 사과를 한 번 더 시키기보다 어떤 말이 속상했는지를 차례대로 물어보았습니다. 작품을 만든 아이는 자신이 열심히 만든 것을 이상하다고 말해서 창피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잠시 생각한 뒤 “놀리려고 한 건 아니었어. 네가 만든 동물 표정이 재미있어 보였어.”라고 자신의 뜻을 다시 설명했습니다. 그제야 작품을 만든 아이도 “다음에는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자신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후 친구는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라고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 교사의 말을 따라 했던 사과와 달리 두 번째 사과에는 자신이 어떤 말로 친구를 속상하게 했는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사과를 빨리 받아내는 것보다 아이들이 서로 무엇 때문에 속상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안해.”라는 말은 갈등을 끝내는 정답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한 뒤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어야 했습니다.

 

같은 장면도 아이마다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바깥놀이를 나가기 위해 줄을 서던 중 두 아이의 목소리가 커진 적이 있습니다. 한 아이는 친구가 갑자기 자기 앞에 끼어들었다고 했고, 다른 아이는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온 것뿐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두 아이 모두 자신이 본 상황이 맞다며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줄의 순서를 확인해 주면 금방 해결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 아이는 줄을 서 있는 동안 친구가 자리를 비웠으니 맨 뒤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른 아이는 모자를 가지러 잠시 다녀왔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장면을 보았지만 두 아이가 알고 있던 기준은 달랐습니다. 저는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판단하기보다 각자 처음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 보도록 했습니다.

 

친구가 자리를 비운 동안 무엇을 보았는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어떤 생각으로 그 자리에 섰는지를 차례대로 확인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자 두 아이도 상대방이 일부러 새치기하거나 자리를 빼앗으려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아이들과 줄을 선 뒤 준비물을 가지러 가야 할 때는 옆 친구에게 먼저 이야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것을 알면 돌아왔을 때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실에서 일어난 갈등은 한쪽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가 본 장면과 친구가 경험한 장면을 함께 들어야 갈등이 생긴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먼저 정하기보다 두 아이가 같은 상황을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였는지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사과보다 필요한 말을 먼저 찾아보았습니다 

보드게임을 하던 중 한 아이가 친구의 놀이 말을 대신 움직이면서 다툼이 생긴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는 갑자기 친구의 손을 밀어냈고, 놀이 말을 움직인 아이는 도와주려고 했는데 왜 미느냐며 화를 냈습니다. 이때 밀친 행동만 보고 사과를 시키면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남아 있게 됩니다. 저는 먼저 손으로 밀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이야기한 뒤, 그 순간 친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내가 움직이려고 했는데 친구가 먼저 해서 싫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친구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내 차례니까 내가 움직일게.”라고 말해 보는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놀이 말을 움직였던 아이에게도 친구를 도와주고 싶을 때는 “내가 도와줄까?”라고 먼저 물어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두 아이는 서로에게 필요한 말을 다시 해 본 뒤 각자의 차례에 맞춰 놀이를 이어 갔습니다. 아이들은 속상한 마음이 생겼을 때 사용할 말을 알고 있어도 실제 상황에서는 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긴 순간에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만 알려 주기보다 그 행동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말을 구체적으로 찾아보았습니다.

 

“밀면 안 돼.”라고 끝내는 것보다 “내가 하려고 했어.”, “먼저 물어봐 줘.”, “다 사용하면 알려 줘.”처럼 상황에 맞는 표현을 직접 사용해 보는 것이 다음 갈등에서 더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과는 이미 일어난 일을 정리하는 말이었지만 필요한 표현을 익히는 것은 비슷한 상황을 다시 만났을 때 자신의 마음을 다르게 전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갈등이 끝난 뒤 다시 관계를 이어 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사과하고 조용해졌다고 해서 갈등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겉으로는 놀이를 다시 시작했지만 한 아이가 계속 친구의 눈치를 보거나 그 친구가 있는 놀이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교사 앞에서는 화해한 뒤 다른 친구들에게 함께 놀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과를 주고받은 순간보다 그 이후의 모습을 조금 더 살펴보았습니다.

 

두 아이가 다시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받는지, 같은 놀이에 참여할 수 있는지,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에게 요청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꼭 이전처럼 바로 함께 놀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쪽 아이가 계속 불편해하거나 놀이에서 제외되지는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갈등 직후에는 혼자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한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억지로 손을 잡게 하거나 함께 놀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다른 놀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뒤 아이가 편안해졌을 때 친구에게 다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어느 날에는 오전에 다툰 두 아이가 서로 다른 놀이를 하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다시 가까워진 적도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먼저 “우리 아까 하던 거 다시 할까?”라고 물었고 다른 아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교사가 화해하는 시간을 정해 주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이 정리된 뒤 다시 관계를 이어 간 것이었습니다. 다만 특정 친구와의 갈등이 반복되거나 한 아이가 계속 놀이에서 제외되는 모습이 나타난다면 사과만으로 마무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같은 일이 생기는지 기록하고 가정과도 구체적인 모습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친구와 다툰 뒤의 표정과 행동까지 살펴보아야 아이가 관계를 회복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와 다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사과하는 말을 빨리 받아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일로 속상했는지 말하고 친구는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들어 보는 과정이 먼저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이 있어야 아이도 자신이 한 행동이 친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교사는 아이들의 갈등을 대신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가까웠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그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말을 알려 주고, 갈등이 끝난 뒤에도 두 아이가 편안하게 교실 생활을 이어 가는지 살펴보는 것까지가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이 다음 갈등을 해결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과는 교사가 시켜서 끝내는 말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한 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말이어야 했습니다. 

 

 

또래 갈등이 주로 어떤 상황에서 나타나는지 궁금하다면 어린이집에서 또래 갈등은 언제 가장 많이 생길까요?에서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