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미술 활동을 준비하던 날이었습니다. 관찰한 대상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종이와 연필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종이를 받자마자 그리고 싶은 부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한 아이는 연필을 손에 쥔 채 종이만 바라보다가 자신은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즐겁게 표현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예시가 있는 활동에서는 자신의 그림이 예시와 다를까 봐 시작을 망설였습니다. 잘 그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설명해도 연필을 쉽게 들지 못했습니다. 아이에게는 그림을 완성하는 일보다 첫 선을 그리는 일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림 전체를 그려보라고 권하기보다 지금 혼자 시작할 수 있는 한 가지 동작을 함께 찾았습니다. 못한다는 말을 하지 않게 하는 것보다 그 말을 한 뒤에도 자신의 손으로 첫 번째 행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자 했습니다.

연필을 들지 못한 아이와 첫 모양을 찾았습니다
아이와 관찰할 대상을 가까이에서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묻기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모양을 찾아보도록 했습니다. 아이는 한동안 대상을 바라보다가 동그란 부분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종이 한쪽에 그 모양 하나만 표현해 보도록 하자 아이는 내려놓았던 연필을 다시 들었습니다.
연필을 든 뒤에도 바로 선을 긋지는 않았습니다. 종이 위에 연필 끝을 대었다가 다시 떼는 행동을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교사가 손을 잡고 동그라미를 대신 그려 주면 활동은 빠르게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망설임을 지나 자신의 손으로 첫 선을 그어 보는 과정은 사라지게 됩니다. 옆에서 기다리며 아이가 손을 움직일 때까지 시간을 주었습니다.
아이가 그린 동그라미는 예시처럼 반듯하지 않았습니다. 한쪽 선이 길었고 끝부분도 정확하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예시와 자신의 그림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지우개를 찾으려는 모습이 보여 무엇이 다르게 보이는지 물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그린 동그라미가 찌그러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잘 그렸다고 바로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관찰한 대상에서 동그란 모양을 직접 찾았다는 점을 먼저 알려 주었습니다. 예시와 다른 선도 아이가 실제로 발견한 부분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림을 지울지 그대로 돌진 아이가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아이는 잠시 고민한 뒤 지우개를 내려놓았습니다.
동그라미 옆에 무엇을 더 그리고 싶은지 묻자 아이는 대상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옆으로 이어진 선을 손가락으로 짚었습니다. 종이에 짧은 선을 하나 더 그린 뒤에는 교사에게 다음 부분을 묻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본모습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다른 선을 이어 그었습니다.
종이 한쪽에서 시작된 그림은 활동이 이어지면서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예시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자신이 그린 부분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완성한 뒤에도 그림 전체를 잘 그렸는지 묻기보다 자신이 가장 먼저 그린 동그라미를 가리켰습니다. 시작하기 전에는 그림을 못 그린다고 했던 아이가 자신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확인한 것은 아이의 그림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완성된 결과를 먼저 떠올리면서 연필을 드는 일까지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림 전체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눈에 들어오는 모양 하나를 찾자 직접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교사의 기다림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시작할 수 있는 크기로 활동을 나누고 첫 동작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돕는 과정이었습니다.
줄넘기를 한 동작씩 나누어 시작했습니다
줄넘기를 연습할 때에도 시작하기 전부터 못한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줄을 돌리며 뛰는 동안 아이는 자신의 줄을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이전에 줄이 발에 걸렸던 경험을 떠올리며 자신은 원래 줄넘기를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친구들이 연속으로 넘는 모습을 보고 난 뒤라 줄을 잡아 보는 일도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줄넘기는 줄을 잡는 동작과 머리 위로 넘기는 동작과 줄이 바닥에 닿는 순간 뛰는 동작이 이어져야 합니다. 아이에게는 이 모든 동작을 한 번에 해야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연속으로 몇 번을 넘을 수 있는지 묻지 않고 줄을 양손으로 잡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줄을 잡은 뒤에는 자신의 앞과 뒤로 천천히 움직여 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줄을 발뒤꿈치에 두고 머리 위로 넘겨 발 앞에 놓았습니다. 줄이 바닥에 닿은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두 발로 넘어 보도록 했습니다. 아이는 줄을 돌리면서 바로 뛰는 동작은 어려워했지만 바닥에 놓인 줄은 두 발로 넘을 수 있었습니다.
줄을 한 번 넘은 아이는 자신도 방금 줄넘기를 한 것인지 물었습니다. 연속으로 넘지는 못했지만 줄을 직접 움직이고 두 발로 넘는 동작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아이는 줄을 다시 발뒤꿈치에 놓았습니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교사가 다음 동작을 말로 안내했지만 두 번째에는 아이가 줄의 위치를 확인한 뒤 스스로 움직였습니다.
다음 연습에서 바로 능숙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줄이 발에 여러 번 걸리자 아이는 다시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전날 성공했으니 할 수 있다고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줄이 어느 위치에서 걸렸는지 함께 살펴보고 줄을 잡는 자세부터 다시 준비했습니다. 성공한 횟수만 기억하게 하면 잘되지 않는 날에는 자신의 능력이 다시 사라졌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줄을 끝까지 돌린 행동과 걸린 줄을 다시 정리한 행동을 함께 확인했습니다. 줄에 걸린 뒤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시 준비한 것도 아이가 직접 해낸 과정이었습니다.
며칠 뒤에도 아이는 줄넘기 활동을 시작할 때 교사 가까이에 섰습니다. 여전히 다른 친구보다 먼저 뛰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줄을 바닥에 내려놓고 바라보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양손으로 줄을 잡고 발뒤꿈치에 둔 뒤 자신이 연습했던 순서를 준비했습니다.
변화는 연속으로 넘은 횟수보다 못한다고 말한 뒤의 행동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줄을 다시 잡았고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줄이 걸렸을 때에는 처음부터 모든 동작을 포기하지 않고 줄의 위치를 정리했습니다. 능숙하게 완성한 결과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첫 동작을 갖게 된 것이 이 아이에게는 더 분명한 경험이었습니다.
못한다는 말보다 그 뒤의 행동을 기록했습니다
아이의 못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 뒤에 나타나는 행동은 달랐습니다. 예시를 오래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고 친구가 시작하는 모습을 기다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전에 어려움을 겪었던 방법을 다시 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말만 기록하면 아이가 활동을 하기 싫어하거나 거부한 것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못한다고 말한 시점과 그 직전에 본 것과 안내를 들은 뒤 나타난 행동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림 활동에서는 예시와 다르게 표현하는 일을 부담스러워했습니다. 줄넘기에서는 줄이 발에 걸렸던 경험이 다음 시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겉으로 나온 말은 같았지만 손을 멈춘 상황은 달랐습니다.
도움을 주는 범위도 상황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그림에서는 관찰한 대상에서 눈에 들어오는 모양 하나를 찾도록 도왔습니다. 줄넘기에서는 여러 동작을 한꺼번에 요구하지 않고 줄을 잡는 동작부터 나누었습니다. 결과를 대신 완성하지 않으면서 아이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첫 단계를 구체적으로 안내했습니다.
활동이 끝난 뒤에는 잘했다는 평가보다 아이가 직접 한 행동을 전했습니다. 망설인 뒤 연필을 다시 들었던 모습과 줄이 발에 걸린 뒤에도 줄을 다시 정리한 모습을 짚어 주었습니다. 결과만 칭찬하면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해냈는지 알기 어려울 수 있었습니다. 눈으로 확인된 행동을 그대로 알려 주자 아이도 자신이 시작했던 과정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이후에도 낯선 활동을 만나면 못한다고 말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달라진 점은 그 말을 한 뒤의 행동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재료를 내려놓고 교사가 대신해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묻거나 어려운 부분만 알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첫 모양을 함께 찾아 달라고 했고 줄넘기를 할 때에는 줄을 넘기는 순간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못한다는 말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목표로 두지는 않았습니다. 아이가 어렵다고 느끼는 마음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 말을 한 뒤 활동을 완전히 내려놓는지와 필요한 도움을 찾아 다시 움직이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연필을 내려놓았던 아이는 종이 위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습니다. 줄을 바닥에 두었던 아이는 자신이 연습했던 순서대로 줄을 다시 잡았습니다. 두 아이 모두 활동을 능숙하게 완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시작하지 못했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첫 동작을 찾았습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못한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필요한 기다림은 끝없이 시간을 주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멈춘 지점을 확인하고 시작할 수 있는 한 단계를 찾도록 돕는 일이었습니다. 교사가 그 첫 동작까지 대신하지 않았을 때 아이는 자신의 방법으로 다음 행동을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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