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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교육

어린이집에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by infoguide-1 2026. 7. 12.

아침에 교실 문을 열면서 오늘은 이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날이 있습니다

전날 퇴근하기 전부터 재료를 하나씩 꺼내 놓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을 혼자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등원한 아이들은 제가 준비한 재료보다 교실

한쪽에 놓여 있던 빈 상자 앞으로 먼저 달려갔습니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옆으로 눕혀 보기도 하면서

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그날은 준비했던 계획이 시작도 하기 전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날이면 괜히 아쉬웠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그런 순간이 기다려집니다.

아이들이 또 어떤 하루를 만들어 줄지

저도 궁금해지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에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아이들의 관심은 언제나 예상 밖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점토 놀이를 이어 가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보는

활동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각자 만들고 싶은 것을

하나씩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손바닥 위에 올려둔 점토를

한참 바라보다가 아이스크림 같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옆에 있던 친구가

그러면 우리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자고 했습니다.

 

정말 그 한마디였습니다.

조용하던 교실이 금방 시끌벅적해졌습니다.

나는 손님 할래!, 그럼 나는 계산하는 사람 할래!
돈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포장컵도 만들자!

아이들은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준비해 두었던 활동지를 펼쳤다가 다시 덮었습니다.

굳이 다음 활동을 설명할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자기들끼리 놀이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는 종이컵을 들고 왔고

다른 아이는 블록으로 계산대를 만들었습니다.

평소 말이 많지 않던 아이도 포장컵을 만들겠다며

친구들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제가 준비한 활동보다 아이들이 만든 이야기가

훨씬 빠르게 커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획표에는 없던 놀이가 더 오래 이어졌습니다

며칠 뒤에는 색을 섞어 보는 활동을 준비했습니다.

어떤 색이 만들어지는지만

알아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초록색이 만들어지자

아이가 괴물약 같다고 말했습니다.

곧이어 다른 아이는 분홍색은

딸기약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연구소 놀이가

다시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은 종이컵을 가져와 비커라고 했고

스포이드를 들고 연구원 흉내를 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서로 역할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준비했던 순서를 잠시 내려놓고

필요한 재료만 더 꺼내주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이야기를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만든 약은 힘이 세지는 약이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도 있었고

내일은 파란 약도 만들어 보자고 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연구소부터 찾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연구해요!!!!

그 말을 듣는데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어제 활동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 마음속에서는 아직 계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몇 번 경험하고 나니

하루 활동이 끝나는 시간과 아이들 놀이가 끝나는 시간은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계획보다 아이들을 더 믿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준비한 활동을 다 하지 못하면

괜히 마음이 남았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도 오늘 왜 계획이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퇴근하면서

떠오르는 장면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하원 준비를 하다가도

우리 내일도 이거 하자는 아이의 목소리였습니다.

 

집에 가기 전에 냉동고 문을 다시 닫아 놓고 가는

아이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아침에 등원하자마자 어제 만들던 놀이부터 찾는

아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활동계획안에는 적혀 있지 않았던 장면들인데

이상하게 그런 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계획을 세우면서도 조금은 비워 둡니다.

아이들이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낼 자리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내일도 분명 계획과 다른 하루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당황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교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는 늘 그렇게 시작됐으니까요.